신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는 교황의 초상,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줄거리 요약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역할, ‘교황’이라는 자리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내면의 공허함과 불안, 그리고 회피의 충동을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모여 새로운 교황을 뽑는 중요한 의식을 통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신성하고도 절차가 엄격한 선출 과정 끝에, 의외의 인물인 멜빌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뽑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중대한 순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발코니에 나서는 대신 돌연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스스로 준비되지 않았음을, 그 책임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무대 뒤로 숨어들고, 바티칸은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정신분석가가 긴급 초청되고, 신성함과 과학이 충돌하는 묘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멜빌은 분석이나 조언보다도 단지 인간으로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원합니다. 그는 바티칸을 몰래 빠져나와 로마 시내를 떠돌며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섞여 들어갑니다. 무명의 배우들, 거리의 사람들, 극단과 정신병원에서 마주한 군상들 속에서 그는 ‘교황’이라는 거대한 타이틀 대신, ‘멜빌’이라는 한 사람으로 존재하고자 합니다. 영화는 이 여정을 통해 교황이라는 인물이 신의 대리자이기 이전에 결국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멜빌은 신앙심도, 의지력도 갖춘 이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외치는 듯한 침묵 속에서 관객은 그가 지닌 인간적인 결핍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정작 사람들은 그를 찾지만, 멜빌은 자신의 길을 따라 조용히 사라질 준비를 합니다. 그가 끝내 발코니에 나서는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는 이 모든 불안을 껴안은 채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외치는 것과도 같은 침묵을 택합니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국내외 평점과 관객 반응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공개 당시 신성모독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종교계 일각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상은 종교 자체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을 담은 영화로 평가받습니다. 극의 전개는 잔잔하지만, 인물 내면의 동요와 갈등은 격렬합니다. 주인공 멜빌을 연기한 미셸 피콜리는 단순한 당황이나 두려움을 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 리더란 어떤 책임을 지는 존재인가를 고민하는 진지한 감정선을 극도로 절제된 표현 속에서 완벽히 소화합니다. 관객 평점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체로 호평입니다. IMDb에서는 7점대, 국내 왓챠에서는 4점 내외의 안정적인 평가를 기록하였으며, ‘종교에 관심 없어도 빠져드는 이야기’, ‘교황의 자리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점이 신선하다’, ‘신과 교회가 아닌, 인간과 불안에 대한 영화’라는 리뷰가 많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멜빌이 거리에서 사람들 틈에 섞여 연극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웃고, 지하철을 타며 시내를 방황하는 장면들은 전 세계 관객들 사이에서 큰 여운을 남기는 시퀀스로 회자됩니다. 이러한 감정적 공감은 종교적 맥락보다는 보편적 인간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진 이들에게는 위로의 영화로 작용합니다. 그동안 교황은 신의 대변자로, 절대적인 존재로 묘사되어 왔지만, 이 영화는 그 이면을 건드리며 ‘당신이라면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던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단순한 종교 영화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불안에 대한 서정시이자, 인간적인 약함을 당당히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극장보다는 OTT 플랫폼에서 조용히 입소문을 타며 팬층을 형성한 이 영화는, 관객 스스로의 ‘불안’과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계기를 제공합니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감독 연출 분석
이 작품을 연출한 난니 모레티 감독은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연출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형 감독입니다. 그는 정치 풍자, 가족의 해체, 신념과 타협 등 이탈리아 사회의 문제를 꾸준히 탐구해왔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종교’라는 프레임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연약함을 더욱 깊이 있게 들여다봅니다. 모레티 감독은 이 작품에서 전통적인 종교 상징들을 과하게 미화하지도 않고, 반대로 조롱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정중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교황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무게’가 한 인간에게 얼마나 버거운지를 천천히, 그리고 따뜻하게 보여줍니다. 그 자신이 정신분석가 역할로 출연하기도 하며 영화 내외적으로 중심 축을 잡고 있는데, 이는 극 중에서 과학과 종교, 이성과 신앙이 만나는 지점을 모레티가 직접 균형 잡고 이끌고자 했던 의도가 엿보입니다. 또한 그는 영화의 리듬과 톤을 무겁게 가져가기보다는, 예상 밖의 유머와 해학을 적절히 섞어 관객의 긴장을 풀어주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브레치 박사와 추기경들의 탁구 경기 장면, 바티칸의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어색한 심리 상담 장면 등은 무게감 있는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내며 모레티 특유의 아이러니한 연출 미학을 드러냅니다. 그는 종교적 권위에 도전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위를 맡은 이 역시 결국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다정하게 상기시킵니다. 이는 신념과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든 현대인에게 확장 가능한 메시지로 작용합니다. 모레티의 영화들은 종종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색을 지녔지만,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다소 철학적이고 개인적인 접근으로, 그만의 연출 세계에 깊이를 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종교, 정치, 심리, 예술을 넘나드는 그의 연출력은 관객을 생각하게 만들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장점이 있으며, 이 작품은 그런 그의 장기가 가장 잘 드러난 영화 중 하나로 꼽힙니다.